연말이 되면 송년회·회식 등 각종 모임이 이어지면서 평소 혈당 관리를 잘 해오던 당뇨 환자들도 '한 잔쯤은 괜찮겠지'라는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그러나 당뇨 환자에게 음주는 혈당 변동 폭을 크게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과식·야식·수면 부족까지 겹치면 혈당 조절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 가정의학과 이상욱 원장(인천참사랑병원)은 "당뇨 환자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은 마시지 않는 것"이라며,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반드시 원칙을 지키고, 위험한 선택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과 함께 당뇨 환자가 불가피하게 술을 마셔야 하는 상황에서 혈당 쇼크 등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다.

술 한 잔도 혈당에 영향을 준다... 자가 약물 중단은 금물
당뇨 환자가 금주를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이상욱 원장은 "알코올이 체내 대사 과정에서 혈당 수치에 직접적인 교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코올이 간에서 처리되는 동안 간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포도당 신생 작용(Gluconeogenesis)'은 방해를 받게 된다. 이로 인해 혈당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혈당이 급격히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맥주나 막걸리처럼 당 성분이 많은 술을 마시거나 고칼로리 안주를 곁들이면 급격한 혈당 상승을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복용 중인 약물과의 상호작용도 중요한 변수다. 설폰계 약물을 복용하거나 인슐린 제제를 사용하는 환자는 알코올 섭취 시 심한 저혈당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마시기 위해 약이나 인슐린 투여를 환자 마음대로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이 원장은 "알코올과 함께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약을 먹느냐에 따라 저혈당과 고혈당을 오고 가면서 혈당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술 마시는 날 약이나 인슐린을 자의로 중단하면 역으로 고혈당을 유발할 수 있어 위험하다"며 "반드시 평소 주치의와 상의해 본인의 혈당 상태에 맞게 약과 인슐린을 조절하는 방법을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어떤 술이 더 위험할까... 피할 수 없을 때, 덜 위험한 선택은?
의학적 관점에서 음주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현재 혈당 조절 상태'다. 이상욱 원장은 "혈당이 조절되지 않거나 망막병증, 신경병증, 신부전 등 당뇨 합병증이 동반된 경우라면 음주는 절대 금물이다. 간질환, 췌장질환, 심부전,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환자 역시 알코올 섭취를 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처방이 늘고 있는 SGLT2 억제제 복용자는 과음 시 '케톤산증' 위험이 증가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혈당 조절이 안정적인 상태에서 주치의와 상의 후 제한적으로 음주를 한다면, 주종 선택에도 신중해야 한다. 소주, 위스키, 보드카 같은 증류주는 당 성분이 적어 상대적으로 혈당 상승 위험은 낮지만, 도수가 높아 저혈당 위험은 여전하다. 반면 맥주, 막걸리, 청주 같은 발효주(곡주)나 달콤한 와인, 칵테일은 당 함량이 높아 혈당을 급격히 높인다.

이 원장은 "굳이 마셔야 한다면 증류주나 드라이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맥주나 과일주보다는 낫다"면서도 "증류주는 도수가 높으므로 물이나 탄산수에 희석해 천천히 마셔야 하며,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적정 음주량에 대해서는 "보통 남성은 하루 2잔 이내(알코올 15~20g), 여성은 1~2잔(남성의 50~70%) 정도로 권고하며, 이는 소주 1~2잔, 맥주 반 캔에서 한 캔, 와인 1잔 정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공복 음주' 위험… 안주 선택과 식사 순서가 혈당 좌우
음주 시 혈당 변동을 최소화하기 위한 핵심 원칙은 '공복 음주 금지'다. 빈속에 술을 마시면 저혈당 위험이 매우 커지므로, 반드시 식사를 먼저 한 뒤 술을 마셔야 한다. 흔히 술을 마시기 때문에 식사 대신 안주로 배를 채우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고칼로리·고지방 섭취로 이어지기 쉽다.

식사와 안주로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탄수화물과 지방이 적은 메뉴를 선택해야 한다. 이상욱 원장의 추천 안주는 생선, 두부, 살코기, 계란, 치즈 등이다. 반면 튀김, 전, 탕 요리, 떡볶이, 달콤한 소스가 들어간 요리, 과일 주스 등은 혈당 관리에 치명적이므로 피해야 한다. 이 원장은 "식사 대신 먹는 안주는 고칼로리, 고지방 식사가 되기 쉽다"며, "적절한 식사를 통해 먼저 배를 든든히 채운 다음 음주와 안주를 곁들인다면, 음주량을 조절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혈당' 더 위험할 수 있어… 저혈당·급반등 대비
당뇨 환자의 음주가 위험한 이유는 술을 마신 직후보다, 몇 시간 뒤 수면 중에 발생하는 '야간 저혈당' 때문이다. 알코올이 간의 포도당 방출을 억제하는 작용이 지속되면서, 술에 취해 잠든 사이 본인도 모르게 의식 소실 등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과음은 인슐린 저항성 악화, 고중성지방혈증 유발, 급성 췌장염 위험 증가 등 전반적인 대사 조절에 악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음주 후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혈당을 측정해야 한다. 평소보다 혈당이 약간 높다면 괜찮지만, 낮게 측정된다면 탄수화물 위주의 간식을 가볍게 섭취해 저혈당을 예방해야 한다. 이상욱 원장은 "술을 깨기 위해 운동을 하고 자는 행동은 밤사이 저혈당 위험을 높이므로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음주 다음 날 관리도 중요하다. 반드시 혈당을 측정하고 평소대로 식사와 수분 섭취를 해야 한다. 만약 저혈당 부근 수치가 나온다면 무리한 신체 활동을 피하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 원장은 "연말 술자리가 많더라도 최소 2~3일 정도의 절대 금주 시간은 필요하다. 이는 혈당에 대한 알코올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간 기능 회복을 위한 것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하며,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최소 1주일 간격을 두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결국 당뇨 환자에게 가장 안전한 음주는 '금주'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철저한 계획과 절제가 필요하다. 이상욱 원장은 "당뇨 환자라고 해서 무조건 음주를 금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피치 못하게 마시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식사를 먼저 하고, 달달한 술은 피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음주 사실을 알려 필요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